그림시 쓰는 사람,배훈 32

[시화-19]우린 폭주기관차로 살았다

#오늘의 시 우린 폭주기관차로 살았다 나는 달린다 새벽에 진격의 기차처럼 말이다 폭주 기관차는 조절하지 못하는 힘으로 식식거리며 앞만 보고 달린다 나이 지긋한 녀석은 내연기관을 다듬어 잘 익은 홍어처럼 삭히며 달린다 언젠가는 자신이 소용 없어질 그날이 온다는 것을 아는 듯 힘겹게 제살을 녹이며 달린다 무엇을 바라고 달리지 않았던 반세기처럼 발걸음도 아장아장 가볍게 세월을 싣고 달린다 어찌 그리 달릴 수 있냐고 묻자 몇 해 전 큰 사고 난 이후 달리는 게 조금 버거워져 이렇게 달린다고... 우리의 삶도 저 늙은 기관차의 지혜를 조금 닮아가면 좋겠다 조금 늦어도 좋은 세상 잠시 멈춰도 나은 세상 우린 폭주기관차로 살았다.

[시화 -18 ] 어 머 니

#오늘의 시 어 머 니 새벽녘 땅거미도 가시지 않은 어두운 부엌에서 누구 먹이려고 그리도 말없이 일어나 떠지지 않던 눈비비시며 자식들 도시락 9개를 싸시던 고귀한 당신의 이름은 어 머 니 하루종일 야채 다듬으셔서 자식 놈 늦게 오는데 자는 모습 숨기려 1원짜리 젓가락 봉지 끼우시던 잔가시 박혀 마치 사포처럼 거칠고 휘어버린 당신의 손마디가 저리시어 눈물도 참으시려 애쓰시던 그리움의 이름은 어 머 니 얼마나 일만 하셨던지 사라져 버린 지문 때문에 1시간 넘게 주민증 만드는데 애태우시던 당신의 이름은 어 머 니 이제 좀 쉬셔요 하지만 했던걸 안 하면 병나서 오래 못 사신다면 뒷 텃밭에서 흙을 메만지시는 당신아 이제는 귀도 멀어버린 몸뚱이 좀 아끼라고 안아줄까 해도 두려워요 앙상한 뼈만 남은 오늘이 길지 않은..

다시읽기(2)-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요나스 요나손)

정말 다사다난한 인생을 산 이가 있습니다. 스페인내전 한가운데에서 장군의 목숨을 구하고 핵폭탄 제조의 살마리를 제공하고 마오쩌둥의 아내를 살리고 블라디 보스톡으로 도망을 갑니다 심지어 김일성, 김정일과도 인연이 있다니!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입니다. 모두가 다 아는 역사의 순간에 우연히 등장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이 노인은 100세 생일을 앞두고 도망칩니다. '아직도 보고 느낄게 많다고 말이죠'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이것저것 핑계만 쌓여가나요 그럼 이 노인을 생각해 보세요. 100년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궁금하고 도전하는걸요. 인생이라는 긴 여행은 참으로 흥미진진했지만,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어쩌면 인간의 어리석음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일 들이 일어..

[시화 -17] 산고의 고통

#오늘의 시 산고의 고통 나는 저 떠오르는 태양을 보지 못했다 두려웠다 그 빛이 나를 비추면 나의 헐벗은 민낯이 드러날까 봐 숨는다 누구든 보지 못하는 곳 깊숙이 나의 내면 어딘가를 어둡고 긴 터널 속 한줄기 빛을 찾는 과정 속에서 나를 만나고 수없는 대화를 하며 헤매었던 시간들 나는 여명이 빚어낸 저 붉은색이 참 좋다 더 가슴의 멍을 보여주려고 준비한 내 청춘을 담은 열정의 색, 비바 마젠타 나는 저 푸르른 구름 낀 새벽녘 새들도 숨죽이는 침묵이 좋다 언젠가 나도 새처럼 날갯짓하며 비상하여 내 가고픈 곳 어디든 날아갈 날 그날이 올 거라 말해주는 영혼의 색, 코발트 블루 언젠가 저 두 색이 내 깃털 곳곳에 묻어나면 나는 나만의 색을 입고 4월의 신부처럼 배시시 웃으며 날아 가리라.

다시읽기 (1) 정호승- 봄길

봄길 정호승 시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시집 , 등을 발표한 시인 정호승. 그가 자신의 시작 노트에 적어놓았던, 희망과 사랑, 격려의 말 67개를 모아 잠언집으로 펴냈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신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과 종교 지도자가 한 말, 또는 보통 사람들이..

[시화-16]그런 시인이고 싶다

#오늘의 시 그런 시인이고 싶다 배 훈 겨울의 매서움도 반기는 시인이고 싶다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 살 애는 추위의 기억을 다시 되돌려 누군가에게 들려줄 마음의 여유 가진 그런 시인이고 싶다 봄의 기운을 사랑하는 시인이고 싶다 스스로를 얽어매 둔 겨울 지나 그런 시절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돌아온 계절을 안아줄 마음 항상 열 수 있는 자비까지 간직한 그런 시인이고 싶다 여름의 시샘도 즐기는 시인이고 싶다 향긋한 꽃들의 향연 지나간 후 푸르른 순록의 풍성함도 무더위로 녹여내 주는 열정으로 뜨거운 이야기도 시원하게 들려주는 그런 시인이고 싶다 가을의 풍요로움도 나누는 시인이고 싶다 넉넉해도 혼자 간직하지 않고 너그러이 품어주고 나누는 그런 아량 깊은 다 내주어도 바보처럼 허허 웃을 줄 아는 그런 시인이고 싶..

[시화-15] 아버지

#오늘의 시 아버지 늘 엄했던 당신 늘 강했던 당신 늘 짠했던 당신 이름은 아버지 그렇게 살아오신 시간을 어찌 버티셨나요 힘드시면 힘들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씀 못하신 시간들 아버지 이젠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존재와 그 무게가 나를 일으켜 주심을 아버지가 되고서 알았답니다 아버지 늘 느티나무 같았던 당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흔들리는 모습도 이제 아름답네요 아버지 이젠 제가 당신의 그늘이 되어드릴게요 저의 품으로 들어오셔요 꼭 안아드릴게요 아버지 오늘은 당신이 많이 많이 보고 싶네요 사랑합니다

[시화-14] 기 억 의 흔 적 들

기억의 흔적들 돌이켜보면 먼 이야기도 아니다 매일 써왔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기억의 흔적이고 개인의 역사이다 삶의 흔적을 우리는 누구나 간직한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여기 오롯이 담겨있다 1990년부터 30여년의 기록을 간직해왔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그 모든 것을 안고 가야한다. 아픔 기쁨 그리움 아련함 소중함 버릴까한다 글로 노래로 대화로 당신곁으로 보낼까 한다. 인생은 순간 순간이 선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