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는 사람,배훈/나를 찾아서 (From Burnout to Balance )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서

배훈사람 2023. 3. 8. 18:34

 모두가 잠든 시간 눈이 번득 뜨고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그는 몽유병환자처럼 일어났다. 핸드폰을 챙기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디론가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신학기라서 그가 바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진용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지난밤 생각해 둔 코스대로 차를 몰아서 가고 있었다. 그가 생각한 곳에는 예상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건 다름이 아닌 다른 안경원 앞에 걸려있는 커다란 홍보용 플래카드였다. 그는 매장 앞에 차를 세워두고, 연신 카메라를 찍어대기 시작하였다. 길거리는 한산했다. 한 번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건물에 거주 중이던 매장관리인이 불쑥 뛰어나와 묻는다.
”무슨 일인데 사진을 아침부터 찍어요? “
”아뇨... 그냥 친구가 안경 쓰는데 좋은 정보가 있어서 알려주려고요..... “
”이 매장이 뭘 잘하는가 사진을 많이 찍으러 온다니깐! “
”그런가요. 장사가 잘되면 좋잖아요. 수고하세요. “

 이렇게 얼버무리고 달아나가 바빴다. 속으로는 '임무를 완수'라고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왔다. 다음 목적지로 차를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차를 몰고 사진을 찍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그는 뭔가 모를 희열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침 해가 고개를 내밀고 그를 반겨주는 듯했다. 그는 그게 좋아서 자주 이렇게 새 학기를 맞이하였다. 모아 온 사진을 매장에 출근하여 돌려보면 프랑에 쓰인 내용을 분석하고 공통적으로 하는 행사내용을 적었다. 거기에 내 매장에서 팔면 좋은 내용과 사은품을 미리 검색하여서 뽑아둔 목록을 더했다. 몇 가지의 시안을 만들어서 다시 찍어온 플래카드와 비교하여 나의 내용이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보았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게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2014년 봄은 이렇게 꽃망울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매일 같은 일상일 것 같지만 그러지만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즐겨하던 아침 운동 아침밥과 같은 루틴을 해내고 출근하였다. 집과 매장까지의 거리는 3미터 내외였다. 같은 건물의 1, 2층을 쓰고 있었다. 내려오면 출근이고, 올라가면 퇴근이었다. 주상복합의 집에서 살았다. 어쩔 때는 출퇴근의 의미가 모호했다. 일부러라도 자기 자신의 나태함을 줄이려고 구두를 신고 정장을 갖추려고 노력하였다. 일상은 늘 변함없이 흘러가는 것 같아서 일부러 매일 다른 옷으로 넥타이라도 다르게 고쳐 매려고 노력하였다. 매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매장 앞을 돌아보고 혹시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였다. 밤에 걸어둔 홍보프랑이 떨어져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나가는 차량이 없어서 다시 주워서 매장정면의 유리창에 부착하였다. 오래된 고무접작봉이 햇빛에 바라여서 떨어진 것이다. 아 내가 매장홍보에 조금 소홀히 하였구나 하고 자동으로 알려주는 듯했다. 출근하던 길을 잠시 멈추고 쏜살같이 홍보물을 만들어주는 인쇄소로 달려갔다. 지난 저녁에 구상하고 새벽에 수집하여 정리한 내용을 홍보프랑으로 만들기 위한 시안을 부탁하고 돌아오면서 한숨을 돌리었다.

 



새 학기의 시작은 늘 이렇게 채바퀴 돌 듯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변해가는 것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매장의 인테리어도 봄이면 개나리처럼 노란 꽃장식을 비록 인조꽃이지만 계절마다 준비해 둔 것들을 직원들과 이곳저곳으로 바꾸어 가며 꾸미고 변화를 알리려 했다. 사실은 손님을 위한 다기보다 좁은 공간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보내는 자신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변화와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은 곳에서 매일 같은 물건을 만지고 하루종일 같은 영업용 언어를 쓰며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그날이 그날 같았다. 그러는 게 싫어서 주인인 진용은 한샘과 양샘 두 직원에게 늘 좋은 아이디어가 없냐고 다그치곤 했다. 결국 결론은 자신이 내렸지만 말이다. 그날도 충장로 5가의 문구단지에 들려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러 나갔었다. 뭘 사야 할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찾은 것은 바로 연두색 망사포 같은 천에 눈길이 갔다. 안경진열장의 바닥이 너무 누렇게 보였던지 푸르디푸른 망사포를 3미터 정도 주인에게 포장해 주라고 하였다. 나는 잡화점 직원에게 물었다.
”봄인데 무슨 장식을 쓰면 이쁜 까요? “
”글쎄요. 무슨 일 하시는데요? “
”안경원이 너무 칙칙해서 봄소식을 좀 전해볼까 해서요. “
”그 망사포에 저기 개구리장식과 연밥잎 장식을 한번 장식해 보셔요. “

그렇게 그녀가 추천한 장식들이 검정 비닐에 담기는 순간이 너무도 좋았다. 봄을 손님들에게 선물하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매번 이렇게 계절이 변할 때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그는 오직 손님을 위한다는 이유로 홍보전단과 홍보용 프랑을 구상하였다. 여름에는 바닷가의 느낌의 비쥬들로, 가을에는 인조단풍나무 장식을, 겨울에는 산타 모자를 직원들에게 쓰게 하며 자기들만의 파티를 즐기면서 살아갔다.
매장문을 열고 구입해 온 봄 장식을 풀어놓고 이건 이렇게 하면 어때, 저건 저기에 두면 어때 서로에게 물어보면서 시작된 일은 1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그렇게 봄날의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그런 일들이 좋아서 인지 매일 아침 매장에 나가는 일들이 좋았다. 다음날도 매장에서 겨울잠을 자고 나온 개구리들이 마치 매장에 뛰어다니는 꿈을 꾸면서 매장에 출근하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매장에는 3~4개의 큰 어항이 있어서 진짜 개굴개굴 하는 소리가 여과기를 통해 나오는 소리와 겹치면서 개구리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손님들은 이런 매장이 가끔은 수족관인지 안경원인지 의아해할 정도로 좋아했다. 사실은 무언가 죽어있는 안경테들보다는 살아서 움직이는 어항 속의 물고기가 좋았다. 물론 어항 속에는 살아 있는 것들이 물고기만은 아니었다, 인조처럼 보이지만 살아서 성장하는 각종 수초들이며 오물고물 살아 움직이는 치가재새끼들이며, 갓 태어난 노란 바닥청소부 안시치어들이 돌아다니는 수조 속이 좋았다. 진용은 매장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생동감이 넘치고 이곳에 나와서 있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서 집에서 키우던 생물들은 하나씩 안경원으로 내리기 시작하였다. 겨울에는 가습역할은 다른 계절에는 산란을 하는 녀석들이 주는 즐거움이 모두를 즐겁게 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사실 매일 어항의 말라버린 물을 채워주고 전면 유리창을 통해 내리쪼이는 햇빛이 어항에 이끼를 끼게 하여서 며칠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푸릇푸릇하게 유리창에 매생이가 휘날리듯 물이끼가 끼게 되니 물속으로 손을 담그고 이걸 제거하는 일은 아주 곤역스러웠다. 이걸 직원에게 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장은 손님들로 붐비었다. 멀리 영광에서 아들소개로 온 손님, 10년 넘게 근처교회 담임 목사하시다가 교회 개척하시러 고흥에서 오신 목사부부, 체대생떼 왔다가 미국으로 유학 갔다 잠시 방학 때 안경과 스포츠고글을 맞추러 들른 학생까지 다양한 이들이 멀리서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는 매번 살아서 움직이는 하울의 성처럼 매장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을 것들과 친절하게 사람들은 응대하는 쥔장과 여직원들의 상냥함이 한몫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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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은 매주 수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