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겨울다워야 좋다는데 뭐가 좋은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날이 추우면 해충들이 겨울에 죽게 되어 좋단다.
눈이 내리면 어린아이들이, 동네 강아지들이 좋아서 뛰어다닌다. 눈이 오면 자동차가 느린 느린 할머니도 엉금엉금 걸어가신다. 겨울이 꼭 좋아 보이지는 않다. 날이 추우면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겨울을 즐길 시간도 줄어드는 것 같아 좀 그렇다. 그냥 개인의 취향이지 꼭 겨울이 좋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계속 변하는 것 같다. 아이가 집에 있으면 녀석들과 놀아줘야 하기 때문에 눈 썰매장도 가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동네 가파른 경사지로 플라스틱 썰매나 비닐 푸대라도 가지고 가야만 겨울을 겨울답게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이 지나가니 어느덧 나이 들어서 겨울산행도 가기 싫어지고 모르겠다. 그냥 따끈한 아랫목이나 겨울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 커피숍 정도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은 옷이라도 편하게 벗고 샤워하면 시원해지지만 겨울은 따뜻하게 입어도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칼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아 겨울 이 녀석 올해도 나의 발가락에 작은 동상 같은 멍을 남기고 간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가니 몸의 끝부분(손가락,발가락) 까지 혈액순환도 잘 되지 않아서 그런 작은 상처를 남기니 여름에는 없는 겨울의 흔적 때문일까 이 계절이 꼭 좋지만은 않다. 하하하 뭐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웃기에는 좀 힘겹다 느껴질 때가 많다.
오래전 겨울에 올랐던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지리산을 등반했던 16살 고1시절의 터벅 머리 친구들이 생각난다. 학교생활의 무료함을 지역의 향도박물관에 가서 고인돌과 솟대를 공부하다가 우리 지역의 산을 등반해 보자 해서 무등산을 시작으로 지리산까지 함께 산행을 시작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무등산 국립공원 내 원효사 분수대가 얼어붙은 어느 날, 무등산전망대를 지나서 무등산장과 서석대 입석대 당시에 군부대 턱 앞까지 갔다가 군인들을 만나서 후다닥 도망쳐왔던 기억,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이곳(무등산 1187m)을 당일에 정복한 이후 다음 목적지는 조금 더 높은 곳으로 2박 3일간의 캠핑장비까지 나름 준비하여 길을 떠난다. 장터목산장을 지나서 5명의 친구들과 호기롭게 산행을 시작했지만 첫날부터 가랑비가 오기 시작하여 33일 내내 비와의 사투를 했던 기억, 첫날은 장터목산장인근에서 그럭저럭 먹을거리와 숙박을 잘 해결하였지만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변변한 장소도 없어서 급하게 지나가던 등산객에게 도움을 구하자 텐트 위에 추위와 비를 막을 큼지막한 비닐막을 치고서 1천 미터가 넘는 산기슭에서 함께 보내면서 친구들과 추억이 더욱더 쌓여갔다.
얼마전 겨울 그렇게 산을 좋아하던 친구 녀석이 대장암 말기판정으로 세상을 등져
버려서 올 겨울은 더 기억에 남을듯 하다.
우중에 끓여 먹었던 라면과 얼어붙은 밥을 넣어서 한 알 한 알 씹히는 그 맛이 그래 겨울 산행에서만 맛보는 이 맛이지 싶었다. 천왕봉까지 퉁퉁 부르튼 발가락을 끌고 끝까지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 이름 모를 밭에서 서리해서 먹었던 몇 개의 과일과 채소들... 지금도 녀석들과 사회에서 만나면 술안주로 그때 그 시절을 이야기하곤 한다. 겨울이면 떠오르는 산에서 보았던 눈꽃의 화려한 화폭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다시 그런 시절이 오지는 않겠지만 꼭 한번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가까운 산이라도 올라보고 싶어 진다. 지나간 청춘을 회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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