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는 사람,배훈/도깨비가 시장에 살아요

피아노 소리에 홀리다 -[3편]

배훈사람 2023. 3. 4. 18:30

 우리 집은 시장에서 한적한 골목에 있는 꽤 큰 옥상이 있는 양옥집이었다. 물론 다 우리 집은 아니었고 민승이 형이 집주인이었고 우리를 포함하여 3집이 같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건물을 주위로 빙 둘러서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는 감나무를 비롯하여 야자나무 몇 그루도 심어져 있는 조금 고급스러운 느낌이 풍기었다. 하지만 이 집의 화장실은 건물 안에 재래식 화장실과 감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마당 모퉁이의 또 다른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집안 식구가 다섯 명인데 누가 집안 토방 끝의 화장실을 쓰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급한 대로 건물밖의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때는 저녁 9시가 넘어서 배가 아파 오는데 화장실을 가야만 하는 상황 어쩌겠는가 공부 중인 누나를 불러서 화장실 가는 길에 보초를 세워두고 감나무잎이 바람에 쉬익 쉬이익 마치 해리포터의 유령들처럼 겁을 잔뜩 먹고 그 길을 지나서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달려 나오다 돌부리에 걸려서 소리를 지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참 겁쟁이였다. 하지만 또 때론 그런 겁쟁이가 높이 3미터의 높이의 개울에서 뛰어내린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상황에 따라서 자주 바뀌었던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은 형과 누나 삼 남매가 함께 학교를 다니느라 항상 집에서는 도시락을 3개씩 싸느라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밥을 챙겨 먹고 가방에 도시락을 넣고 책은 넣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학교를 향해가는 길은 시장과 이어진 골목길에 친구들의 이름을 부
르면서 한 명씩 챙기며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학교 가는 길은 항상 즐거웠다. 공부를 하러 간다기보다는 친구들 만나서 놀러 간다고
하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까웠다. 수업이 끝나
는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연필 따먹기며 딱지 따먹기, 지우개뒤
집기, 등 참 다양한 도구로 친구들과 게임을
하느라 온통 어수선했다. 왜 이때는 이런 놀이
가 재밌었는지 참 하루가 정말 빨리도 흘러갔
다.
 


오후 1시 정도 되면 학교는 끝나고 학교후문
의 문방구에 들려서 쫀드기며 아폴로를 입에 물고 쪽쪽 팔면서 가방한쪽의 주판을 들고 학교후문의 주산학원과 합기도 도장을 다녔
었다. 그 당시에는 산수를 배웠는데 주판으로 천 단위, 만단 위의, 숫자를 쉽게 연산하여 암산시험도 하고 대회에 나가서 암산왕 상장
도 받았다. 지금도 그 당시의 암산법으로 머릿속의 주판을 굴리는 습관이 그래도 수학
보다 산수의 힘이 강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합기도 1품까지 따고 하루하루가 학교 학원 집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집에 돌아올 때
즈음엔 항상 우리 방과 벽 위에는 작은 유리창
이 있었다. 내 생각에는 예전 일본식 스타일이
었는데 방과 방사이 위공간에 유리창이 있게 만들어져서 작지만 그곳에 다른 방의 소리가 들리는데 피아노를 치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
올 때면 우리 누나는 그곳을 통해 옆집 누나의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면서 피아노 치는 누나
를 부러워했다. 우리 누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피아노 학원은 다른 학원
보다 교습비가 비싸서 배우지 못하였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피아노를 가지고 있고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그 누나 부모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항상 뒷모습만 보이는 긴생머
리의 누나는 나의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집주인 누나의 피아노소
리는 들리지 않았고, 안집 주인은 다른 사람에
게 집을 전세 내놓고 이사가 버렸다. 나의 환상
도 그 누나와의 이별로 끝이 나버렸다.  
고등학생이었던 이 누나를 좋아했었다. 마음속으로 짝사랑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
구나 싶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백마를 탄 왕자니, 신데렐라를 보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하지만 나에게 현실에서 그누 나는 신데렐라와 같았
다. 귀속에 울리는 ‘파라바라 빠라바 바빠빰~~’ 이렇게 시작하는 ‘엘리자를 위하여’의 멜로디가 지금도 선명하다.
 


그시절 옆집 누나는 비비안 리처럼 보였다.


주산학원 앞에는 작은 언덕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미끄럼 타기를 하는 것이 학원에서 주판을 가지고 셈을 하는 것보다 즐거웠다. 같은 반친구 녀석들과 그곳에서 주판을 가지고 놀다가 아마도 주판을 타기도 했던 것 같다. 주판은 나무로 만들어져서 당연히 그냥 파손되기 쉬웠다. 이주판을 부숴 먹은 게 몇 개나 되는지는 생각할 수 없지만 정말 많이 야단을 맞은 걸 보면 어릴 때 꽤나 개구쟁이
였었다. 주산학원과 합기도장은 같은 건물에 있었다. 항상 같은 학원 친구들이 같이 이동하다 보니 너무 친해져서 학원이며 합기도장에서는 장난치다가 선생님과 사범님
에게 걸려서 무릎 꿇고 벌서는 일이 많았다. 그 시간에는 땀 뻘뻘 흘리면서도 서로 눈빛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왔다. 야단맞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 시간에도 장난을 칠까 눈치를 보는 정말 못 말리는 녀석들이었다.
 



한 번은 동네 하수구청소를 하는 날이면 그날은 계돈 찾는 날이 된다.. 무슨 이야기
내면 그 시절에는 문방구 앞에 동전을 넣고 돌리면 나오는 플라스틱통이 있었는데 10원짜리 50원짜리 놀이여서 동전을 넣다가 잘못 넣으면 동전이 떨어져서 하수구가 흘러가는 곳의 통로 위로 동전이 굴러가서 빠지기 일쑤였다.. 동전을 흐려진 물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았다. 몇 달에 한 번씩 그곳을 열어서 흙을 퍼놓은 곳에는 악취가 심하게 났지만 수많은 보물들이 그곳에 숨겨져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곳을 뒤지면 무언가 보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서 친구들이 다 집에 가고 돌아간 그곳으로 조심스레 가서 종이봉지와 나무젓가락으로 새까 맛게 변색된 동전과 유리구슬 쇠구슬등 보물을 캐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젓가락으로 이 흙더미를 파헤치다 보면 나무젓가락은 부러지고 손가락으로 파헤치다 손가락에 독성에 오염되어 저릴 때도 있었다. 참 무모하지만 그 수입은 솔솔 했다. 어린 나이에 그런 곳에서 밝았던 것 같다. 일종의 버려진 컴퓨터를 분해해서 부품을 팔아 용돈을 벌었던 형에게서 배운 노하우?일까요... 웃음밖에?일까요... 나오지 않는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의 머릿속에 경제개념이 이렇게 생겨났다는 것이 우습다.
 
매주 토요일 4편 계속됩니다.